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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학창시절 지리 시간에 암기했던 지명들? 여행을 갔을 때 유용하게 사용했던 맛집 안내도? 지도는 분명 ‘기능’과 ‘실용’이 목적입니다. 그러나 그는 말합니다. ‘마음’과 ‘사람’이 우선이라고요. 자신을 ‘지도공(地圖工)’이라고 소개하는 GIS 유나이티드 송규봉(48) 대표. 그의 지도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실까요?

단 한 명의 고객을 위한 세탁소 지도

2002년 어느 날, 그에게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세탁소 지도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죠. 친구는 한국에서 잘 나가는 패션브랜드를 경영하다 IMF 때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로 이민을 왔습니다. 온 가족이 빈털터리 상태로 말이지요.
이민 와 5년 동안 세탁소에서 일하며 애면글면 돈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세탁소를 하나 인수해 자신의 가게를 열고 싶어 했습니다. 한데 어디에 내야 할지 고민에 휩싸였지요. 인생의 중차대한 결정 앞에 ‘지도 전공자’인 친구 송규봉에게 SOS를 청한 겁니다.
“부담이 컸지만 지도를 만들어보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런데 제가 세탁소 일을 전혀 몰랐죠. 2달 동안 주말마다 친구가 일하는 세탁소로 출근했어요. 대형 바구니에 바지, 셔츠, 점퍼 등을 종류대로 분류해서 넣고 다림질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오나 틈틈이 살펴보면서요.”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각종 통계와 근처 세탁소들의 매출추이, 주민들의 소득, 인종과 같은 부분들도 꼼꼼히 분석했지요. 조사한 내용을 담아 40쪽에 이르는 상권분석 보고서를 완성했습니다. 놀랍게도 그가 몫 좋은 가게 1순위로 분석한 곳과 친구가 인수하려고 점 찍어 둔 세탁소가 일치했지요. 결국 친구는 그 가게를 인수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송규봉은 ‘내 인생의 첫 번째 지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회상합니다.
“지리정보시스템(GIS)을 배운 뒤 ‘내가 한 공부가 누군가를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는 학문이구나’ 하고 느낀 가장 가슴 뿌듯한 경험이에요. 앞으로 계속 GIS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사건이기도 하고요.”
오직 한 사람을 위한 유일무이한 세탁소 지도를 만들면서 깨달았던 겁니다. 이 일을 업(業)으로 삼아야겠다는 사실을요. 생계유지의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일 거라는 행복한 확신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도, 사회현상의 X-ray

그는 현재 GIS 유나이티드 대표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GIS 분석전문회사는 세워진 지 올해로 5년째인데, 설립 당시만 해도 GIS를 분석하는 일은 국내에서 거의 불모지에 가까웠습니다. 말하자면 한국 GIS 분야에 선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송규봉이 하는 일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컴퓨터가 기반이 되는 지도를 제작’하는 겁니다. 데이터를 모아 지리정보시스템을 통해 핵심 사항이 도출된 지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동안 그의 손을 거쳐 커피전문점 경쟁지도, 야쿠르트 판매지도, 생태탐방 갯벌지도, 도서관 대출지도, 풍력단지 바람지도와 같은 다양한 지도가 완성됐습니다.

도봉구청, 주차 및 안전안심 정책개발을 위한 GIS 정책지도

NEPA, 아웃도어 고속도로 휴게소
아울렛 위치 지도

도봉산·북한산 둘레길
구간별 탐방객 수 지도

삼성물산, 자사보유 주요사업지
주변상권 동향분석 지도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지형분류에 따른
강원도 풍력등급지도

영화진흥위원회, 문화관광부
예술영화전용관 지도

송규봉 대표는 “초등학교 통학안전지도가 밑거름이 되어 어린이들이 교통사고 안 당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상상만 해도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취재 차 만났을 때 그는 한 초등학교 통학안전지도를 만드는 데 열중이었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어린이들이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기에 학생들에게 위험이 되는 요소를 없애도록 돕는 게 이 지도의 목적이지요.
“학생 1,200명을 대상으로 통학 루트 설문조사를 벌인 뒤, 그 결과를 일일이 마우스로 클릭해 옮기는 컴퓨터 수작업을 거쳐요. 그러면 지도 위에 선이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죠.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위험하다고 느끼는 지역이나 요소를 도출해낼 수 있어요.”
이 지도는 교통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 단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단초가 됩니다. 그는 그래서 GIS 지도를 만드는 까닭은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해서 더 좋은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을 돕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덧붙여 이런 말도 했지요. “GIS 지도는 사회 버전용의 엑스레이(X-ray)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 몸에 이상신호가 있을 경우 어디가 안 좋은지 병원에서 X-ray를 찍어 원인을 살피듯, 사회도 마찬가지로 범죄나 사건사고 등 문제가 발생했을 때 GIS 지도를 통해 사건의 원인을 진단할 수 있기 때문이겠죠.

기술이 아닌 사람에서 시작

그는 GIS 지도 제작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말합니다. 때론 돈이 안 되지만 의미 있다고 판단되는 작업이면 팔을 걷어 부치고 회사 직원들이 다같이 뛰어든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통학안전지도도 사실 계약 업무조건상엔 없던 일이었습니다.
그의 지도 인생, 그러면 언제부터 시작됐던 걸까요. 시곗바늘을 15년 전으로 돌려보겠습니다. 당시 그는 미국 유학생이었지요. 환경정책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1999년에 유학길에 올랐으나, 첫 학기는 참담했습니다. 수업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자연히 입도 뻥긋 못했답니다. 빽빽하게 써 내려 가야 할 시험답안지는 백지 상태로 제출하기 일쑤였고요.
그렇게 1년을 보낸 뒤 맞은 2000년, 무슨 수업을 들어야 할까 무척 고민했습니다. 주변에 조언을 구하자 세 명이 모두 데이나 탐린 교수의 GIS 수업을 추천했다지요. 그때까지만 해도 GIS가 뭔지 몰랐다고 합니다.
“탐린 교수님의 GIS 기초수업을 들으며 제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GIS 중독증에 걸린 듯 파고들었죠. 교수님은 학생들이 제출한 수백 쪽의 과제물을 꼼꼼히 읽고 일일이 피드백을 달아주었어요. 저는 교수님 조교로 또 프로젝트 연구생으로 일했습니다. 탐린 교수님을 만난 게 제 삶의 가장 값진 만남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어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들려주었습니다.
“조교로 일했을 때 한 번은 어떤 학생이 탐린 교수님에게 질문했어요. 그런데 교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나보다 조교가 더 잘 알 테니 따로 답을 들으시게.’ 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데 얼마나 울컥했는지 몰라요.”
그가 이끄는 회사의 모토는 ‘기술로 시작하지 마라. 사람으로 시작하라(Do not begin with the technology. Begin with the people)’입니다. 이 모토는 바로 탐린 교수가 논문의 소제목으로 적은 문장이라고 하지요. 존경하는 스승이 남긴 문장이 회사의 방향성이 되었고, 나아가 그가 GIS 분야에서 일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인생을 이루는 4원소

지도는 ‘점·선·면·화소’ 네 가지로 이루어집니다. 송규봉의 설명에 따르면 점은 사람 또는 사물의 위치를, 선은 강·도로·철도·국경선을, 면은 영토·권역·행정구역과 같은 범위를, 화소는 밀도·고도·방향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그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나만의 유일한 지도를 그려나가는 과정일 텐데, 인생을 지도에 비유했을 때 이 4원소는 무엇을 가리키는지를요.
“점은 ‘사람’인 것 같아요. 시인 심보선은 ‘삼십대’란 시에서 ‘산책은 나의 종교’라고 썼어요. 거기에 빗대면 제게 ‘사람은 나의 종교’예요. 제겐 사람이 가장 중요해요. 선은 ‘관계’로 볼 수 있겠죠. 사람과 사람이 만나 인연이라는 선이 만들어지니까요. 면은 ‘장르 또는 분야’라고 할 수 있겠고요. 삶을 영위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분야지요. 화소는 분야에 담는 내용, 즉 ‘가치’라고 봐요. 각자가 지닌 가치관에 따라 관계는 특별해지기도 하고 무뎌지기도 할 거예요.”

그는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인생의 뿌듯한 결정은 모두 주변 사람들 덕분에 내릴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세탁소 지도를 의뢰한 친구부터 GIS 수업을 추천해준 이들, 인생의 확고한 좌표를 찍도록 길잡이가 돼 준 탐린 교수까지.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이름도 ‘호명’했습니다. 국문학을 공부하던 20대, 시인 고은의 말(‘나에게 글쓰기는 매일의 축제요, 스포츠다’)은 자신이 갖고 있던 ‘창작=고통’이란 생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답니다.

또 산울림의 ‘광팬’임을 자청하는 그는 김창완이 쓴 글을 읽고 ‘내가 정말 그리워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 중심으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인간관계의 전면적 정리를 감행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그는 이야기합니다. 20대 시절 학생운동을 벌인 이유로 감옥생활을 하면서, 또 대학 졸업 후 정치 분야에 잠시 몸을 담그면서 인간관계의 허망함을 느꼈다고요. 어디 그 시절뿐이었겠는지요. 인생 가운데 ‘어떻게 네가 이럴 수가’ 하는 순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사람 때문에 몸서리쳤지만, 돌아보면, 폐허 같은 삶 속에서도 사람 덕분에 견뎠고 버텨낼 수 있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송규봉은 ‘사람이 인생의 지도’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song_draw_icon준비물: A4 용지 1장, 필기구

① 우리나라 지도와 세계지도를 대략적으로 그린 뒤, 태어난 곳에 점을 찍으세요.
      저는 보성 벌교읍에서 태어났어요.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대학교를 나왔지요.
② 자신이 지나온 발자취를 표시하세요.
      대학 때 강릉, 부산, 진주, 제주도 등 여행을 두루 다녔어요.
③ 장소에서 만났던 중요한 사람들도 적어보세요.
      저에겐 중학교 때 국어를 가르쳐 주었던 김성갑 선생님이 잊지 못할 사람이랍니다.
④ 인생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꼈던 사건이나 장소를 짚어보세요.
      제 인생에선 미국 필라델피아, 탐린 교수님, 세탁소 지도를 부탁한 친구를 빼놓을 수 없죠.

song_draw_icon①~④를 통해 내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누구와 함께할 때 마음이 가장 충만했었는지를 찾아보세요. 그 부분만 남기고 나머지 표시들은 지우세요. 그러면 마음속 별자리 같은 지도가 한 장 완성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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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정수영     포토그래퍼 | 조윤구     디자이너 | 이지혜    일러스트 | 최영환     퍼블리셔 | 박현원      사진제공 | GIS 유나이티드